왜 오늘 이 신호인가
버려야 할 민주주의, 지켜야할 민주주의
이번 주, 한 사람의 자리와 한 국가의 토대를 동시에 흔드는 신호들이 왔습니다.
삼성전자가 AI 도입 성과를 '인력 대체 규모(FTE)'로 측정하기 시작했습니다. 한 사람이 자기 직무가 사라지는 과정을 회사에 숫자로 보고해야 하는 시대입니다. 같은 주, 전 세계 기술직 15만 명이 해고됐습니다. 전년 대비 44% 늘어난 규모입니다. 노동으로 먹고살던 사회계약이 밑동부터 흔들립니다.
버니 샌더스는 7조 달러 규모의 AI 국부펀드 법안을 발의했습니다. 거대 AI 기업 주식의 절반을 거둬 전 국민이 나눠 갖자는 구상입니다. 놀라운 것은 반대편입니다. 트럼프도, 오픈AI의 알트먼도, 앤트로픽도 형태는 달라도 "전 국민이 AI의 부를 나눠야 한다"는 데 합류했습니다. 좌우를 막론하고, 분배라는 근본 질문이 정치의 한복판으로 돌아왔습니다.
같은 주, 스페이스X가 857억 달러를 조달하며 사상 최대로 상장했습니다. 시가총액 2조 달러로 TSMC를 넘어섰습니다. 우주 통신, AI, 개발 도구를 수직 계열화한 이 기업은 이제 웬만한 국가보다 강한 인프라를 소유합니다. 미 법무부는 환경법을 위반한 xAI의 가스 터빈을 "국가 안보"를 명분으로 옹호했습니다. 국가가 특정 기업의 인프라를 비호하는 단계입니다.
신호들의 공통점은 하나입니다. 우리가 350년간 의지해온 약속, 곧 "국가가 시민의 삶을 보장한다"는 사회계약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그 자리를 자본과 알고리즘이 채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렇다면 국가를 어떻게 다시 지을 것인가. 그리고 그 재설계에서도 절대 양도할 수 없는 것은 무엇인가. 이 질문이 이번 시그널의 전부입니다.
리바이어던은 원래 다시 설계되는 것이었다
질서가 무너지는 시대는 늘 국가를 다시 설계하는 시대였습니다.
17세기 영국은 내전의 시대였습니다. 토머스 홉스는 그 혼돈 속에서 『리바이어던』을 썼습니다. 인간의 자연 상태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며, 이 야만에서 벗어나려면 개인이 권리를 거대한 주권자에게 양도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리바이어던, 곧 국가라는 인공 괴물의 탄생입니다. 안전을 대가로 자유의 일부를 맡긴 것입니다.
존 로크는 한 걸음 나아갔습니다. 국가는 절대 권력이 아니라 생명·자유·재산을 지키기 위한 신탁이며, 국가가 그 의무를 저버리면 시민은 계약을 파기하고 저항할 권리가 있다고 보았습니다. 무엇보다 그는 양도할 수 없는 권리가 있다고 했습니다. 시민이 국가에 많은 것을 위임해도, 생명과 자유만은 넘길 수 없다는 것입니다. 넘기는 순간 그것은 계약이 아니라 노예 계약이 되기 때문입니다.
루소는 질문을 뒤집었습니다. 자연 상태의 인간은 자유롭고 선했으나, 사유재산과 문명이 불평등과 예속을 낳았다고 보았습니다. 그가 제시한 해법은 '일반의지'에 기초한 새로운 계약이었습니다. 개인이 공동체 전체에 자신을 맡김으로써, 역설적으로 더 자유로워진다는 것입니다.
세 사상가의 공통점은 명확합니다. 그들은 모두 질서가 붕괴한 시대에, 국가를 누구를 위해 어떻게 다시 지을 것인가를 물었습니다. 리바이어던은 한 번 만들어진 뒤 고정된 것이 아니라, 시대마다 다시 설계되는 인공물이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선 자리가 정확히 그곳입니다. 다만 이번에 권력을 쥐려는 주체는 왕도, 의회도 아닙니다. 알고리즘과 자본입니다.
새로운 자연 상태: 거래가 가치를 대체하다
홉스의 자연 상태는 만인의 투쟁이었습니다. 2026년의 자연 상태는 만인의 거래입니다.
가치 기반 질서가 거래 기반 질서로 바뀌었습니다. 미국은 동맹국 이스라엘을 배제하고 적성국 이란과 거래했습니다. 안보 우산이라는 공공재가 청구서로 바뀌었습니다. 이란은 호르무즈라는 공해를 통행료 징수 구역으로 사유화하려 합니다. 케빈 워시 연준 의장은 점도표 제출을 거부하고 포워드 가이던스를 폐기했습니다. 중앙은행이 제공하던 예측 가능성이라는 공공재마저 거두어들였습니다.
이것이 새로운 자연 상태입니다. 약속도, 가치도, 신뢰도 없습니다. 매 순간의 비용과 편익만 있습니다. 강자가 규칙을 정하고, 약자는 통행료를 냅니다. 동맹은 구독제가 되고, 평화는 거래가 되며, 안전은 상품이 됩니다.
홉스가 두려워한 것이 바로 이 상태였습니다. 보증인이 사라진 세계, 누구도 약속을 지키지 않는 세계. 그가 리바이어던을 불러낸 이유입니다. 그런데 지금, 낡은 리바이어던인 국민국가는 그 역할을 점점 내려놓고 있습니다. 서울은 2050년까지 청년 인구가 반토막 나는 게로폴리스를 향하고, 주택 착공은 반토막 났으며, 미디어 기업들은 줄지어 회생을 신청합니다. 국가가 보장하던 안전망이 곳곳에서 찢어지고 있습니다.
낡은 리바이어던 — 왜 지금의 민주주의는 작동하지 않는가
지금의 민주주의 시스템은 산업화 시대에 맞춰 설계된 기계입니다. 그 설계가 새 시대에 맞지 않습니다. 세 가지 부품이 동시에 수명을 다하고 있습니다.
첫째, 노동 중심의 분배입니다. 산업화 이후 국가는 "일하는 만큼 갖는다"는 원칙 위에 섰습니다. 그러나 AI가 노동을 대체하면 이 원칙이 무너집니다. 삼성의 FTE 측정, 15만 명의 해고가 그 신호입니다. 일자리가 사라진 자리에서 분배를 노동에만 묶어둘 수 없습니다. 샌더스의 국부펀드가 좌우를 막론하고 호응을 얻는 이유입니다.
둘째, 4~5년의 선거 주기입니다. 정치는 다음 선거까지만 내다봅니다. 그러나 AI 인프라, 에너지 전환, 기후 대응은 10년, 20년 단위의 과제입니다. 임기 안에 성과가 안 나는 일을 정치인은 손대지 않습니다. 짧은 선거 주기와 긴 문명적 과제 사이의 불일치가, 가장 중요한 결정을 미루게 만듭니다.
셋째, 영토 기반의 시민권입니다. 국가는 국경 안의 시민에게 권리를 줍니다. 그러나 스타링크는 국경 위를 날고, 데이터센터는 궤도로 올라가며, AI 모델은 어느 나라에도 속하지 않습니다. 시민의 삶을 좌우하는 권력이 국경을 벗어났는데, 시민의 권리는 여전히 국경 안에 갇혀 있습니다.
이 세 부품이 고장 난 자리에 새로운 괴물이 들어서고 있습니다. 자본-기술 복합체입니다. 스페이스X는 사실상 '기업-국가'를 구축했고, 엔비디아는 고객사가 빚을 내어 자사 GPU를 사게 만드는 순환 금융을 지배하며, 빅테크는 자체 발전소로 에너지를 사유화합니다. 문제의 핵심은 이것입니다. 이 새로운 리바이어던에게 우리는 권리를 양도한 적이 없습니다. 홉스의 국가는 계약의 산물이었지만, 자본-기술 복합체는 계약 없이 권력을 쥐었습니다. 동의한 적 없는 주권자가 우리의 삶을 규율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포기할 수 없는 민주주의
그러나 민주주의를 다시 설계하는 일에는 치명적인 함정이 있습니다. 다시 짓는다는 명분으로, 무너뜨려서는 안 될 토대까지 건드리는 것입니다.
역사는 형식과 핵심을 구별하라고 가르칩니다. 민주주의의 형식은 늘 바뀌어 왔습니다. 고대 아테네에서 투표권은 성인 남성에게만 있었습니다. 영국에서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투표권을 얻은 것은 1928년, 미국에서 흑인의 투표권이 실질적으로 보장된 것은 1965년입니다. '1인 1표'는 200년에 걸친 형식의 격변 끝에 도달한 것입니다. 직접 모이던 아테네의 민주주의가 대의제로 바뀐 것도 규모에 맞춘 형식의 진화였습니다. 형식은 늘 바뀌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변화를 관통하는 방향은 하나였습니다. 더 많은 사람이, 더 평등하게, 자기 삶을 스스로 결정하게 한다는 것.
그래서 새로운 민주주의 시스템을 설계할 때, 바꿀 것과 지킬 것을 엄격히 나눠야 합니다. 노동 중심 분배도, 짧은 선거 주기도, 영토 기반 시민권도 형식입니다. 과감하게 바꿔야 합니다. 그러나 다음 네 가지는 어떤 시대에도 양도할 수 없는 핵심입니다.
인간의 존엄이 첫 번째입니다. 사람은 비용이 아닙니다. FTE라는 지표는 인간을 삭감 가능한 비용으로 환산합니다. 효율의 이름으로 사람을 숫자로 바꾸는 순간, 국가는 존재 이유를 잃습니다. 어떤 기술도, 어떤 효율도 인간이 목적이라는 원칙을 넘어설 수 없습니다.
자유가 두 번째입니다. 스스로 생각하고 선택할 자유입니다. 알고리즘이 무엇을 믿을지 정해주고, 추천 시스템이 무엇을 원할지 결정해주는 시대에 이 자유가 가장 위협받습니다. 편리함의 대가로 판단을 기계에 넘기는 순간, 자유는 사라집니다.
평등이 세 번째입니다. 1인 1표. 부자의 표도 가난한 자의 표도 같은 무게를 갖는다는 원칙입니다. 데이터를 많이 가진 자가, 연산을 많이 가진 자가 더 큰 발언권을 갖는 시대에 이 원칙이 무너질 위험에 처해 있습니다. 기술 권력이 정치 권력으로 환산되지 않도록 막는 것, 그것이 평등의 현대적 과제입니다.
권력의 회수 가능성이 네 번째입니다. 로크가 말한 저항권입니다. 권력이 의무를 저버리면 시민이 거둬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AI와 자본이 쥔 권력은 회수 장치가 없습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권력을 위임한 적조차 없습니다. 어떤 새로운 국가를 짓든, 권력을 되찾을 수 있는 길만은 반드시 남겨두어야 합니다.
이 네 가지는 새 민주주의의 헌법적 핵심이자, 미래에도 포기해선 안 될 절대적 가치입니다. 형식은 수단이고, 이것은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민주주의 재설계는 환상인가
"민주주의 국가는 여전히 건재하다. 군대도, 세금도, 법도 국가가 쥐고 있다. 재설계 운운은 과장이다." 흔한 반론입니다.
절반만 맞습니다. 국가는 물리적 강제력을 여전히 독점합니다. 그러나 그 강제력을 작동시키는 인프라가 기업으로 넘어갔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선은 스타링크가 끊기면 마비됩니다. 한 기업의 결정이 전쟁의 향방을 좌우합니다. 국가가 군대를 가져도, 그 군대의 통신과 연산을 기업이 쥐고 있다면 주권은 이미 분할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샌더스식 국유화가 답인가?" 두 번째 질문입니다. 이것도 위험합니다. AI를 국가가 절반 소유하면, 홉스의 리바이어던이 디지털 빅브라더로 부활할 뿐입니다. 국가가 AI를 통제하면 표현의 자유와 혁신이 질식하고, 기업이 AI를 독점하면 시민이 소외됩니다. 양쪽 모두 함정입니다.
"보편 가치는 추상적 구호일 뿐"이라는 반론도 있습니다. 그러나 역사는 반대로 증명합니다. 노예제는 한때 경제적으로 합리적인 제도였습니다. 그것을 무너뜨린 것은 효율이 아니라 "인간은 소유될 수 없다"는 원칙이었습니다. 여성에게 투표권이 없던 시절, 그것을 바꾼 것은 "사람은 성별로 차별받지 않는다"는 원칙이었습니다. 보편 가치는 형식을 바꾸는 가장 강력한 현실적 힘이었습니다.
진짜 질문은 "국가를 다시 지을 것인가"가 아닙니다. "누구를 위해, 무엇을 지키며 다시 지을 것인가"입니다. 국유화도 사유화도 아닌 제3의 길. 로크가 말한 신탁의 원리를 떠올려야 합니다. 권력은 양도되는 것이 아니라 신탁되는 것이며, 신탁의 의무를 저버리면 회수될 수 있어야 합니다.
무엇을 해야 하는가
새로운 사회계약은 추상적 이상이 아니라 구체적 설계의 문제입니다. 형식은 과감하게 바꾸되, 핵심은 완강하게 지키는 설계입니다.
첫째, 분배의 형식을 바꾸되 평등의 원칙은 지켜야 합니다. 노동 중심 분배가 한계에 부딪혔다면, AI가 만든 부에 접근할 새로운 권리를 설계해야 합니다. 샌더스의 국부펀드는 방향은 옳으나 방법이 거칩니다. 국가가 지분을 쥐는 대신, 시민이 직접 연산과 에너지에 접근할 권리를 신탁하는 구조가 필요합니다. 지난 시그널에서 다룬 보편적 기본 연산권이 그 출발점입니다. 현금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부를 만드는 수단 자체에 모두가 평등하게 접근하게 하는 것입니다.
둘째, 의사결정의 시간 지평을 늘리되 회수 가능성은 지켜야 합니다. 10년, 20년의 과제를 다룰 장기 의사결정 기구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 기구가 시민의 통제를 벗어나면 새로운 권력 독점이 됩니다. 장기성과 회수 가능성을 동시에 담는 설계, 예컨대 시민이 직접 참여하고 정기적으로 검증하는 숙의 기구가 그 방향입니다.
셋째, 권력의 무대는 국경을 넘되 존엄의 기준은 지켜야 합니다. 국경을 벗어난 기술 권력을 규율하려면 국제적 협력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 어떤 국제 규범도 인간 존엄이라는 기준 아래에서 설계되어야 합니다. 효율적인 국제 질서가 아니라, 인간을 목적으로 삼는 국제 질서여야 합니다.
우리는 어떤 리바이어던을 지을 것인가
홉스는 안전을 위해 자유를 맡기라 했고, 로크는 그 권력을 회수할 수 있어야 한다 했으며, 루소는 공동체에 자신을 맡김으로써 더 자유로워진다 했습니다. 세 사람 모두, 인간이 어떤 질서 아래 살 것인가를 스스로 설계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지금 우리는 동의한 적 없는 계약 아래 살고 있습니다. 우리의 데이터로 학습한 AI가 우리의 일자리를 지우고, 우리가 낸 세금이 만든 안보 우산이 거래의 대상이 되며, 우리가 쓰는 전기와 연산을 소수 기업이 사유화합니다. 낡은 리바이어던은 우리를 지키지 못하고, 새로운 리바이어던은 우리에게 서명을 요청한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직접 새 리바이어던을 설계해야 합니다. 노동 중심의 분배도, 짧은 선거 주기도, 국경 안의 시민권도 새 시대에 맞지 않습니다. 이 형식들은 과감하게 바꿔야 합니다. 그러나 인간이 목적이라는 것, 스스로 생각할 자유, 모든 표가 같은 무게를 갖는 평등, 권력을 되찾을 수 있는 길. 이것만은 새 국가의 주춧돌로 끝까지 지켜야 합니다.
미래를 위해 민주주의 국가를 다시 디자인 하는 일은, 형식을 바꾸는 용기와 핵심을 지키는 고집을 동시에 요구합니다. 둘 중 하나만 하면 실패합니다. 형식만 지키면 시대에 뒤처지고, 핵심까지 버리면 그것은 더 이상 시민의 국가가 아닙니다. 350년 전 홉스가 그러했듯, 우리도 지금 우리 시대의 리바이어던을 설계해야 합니다. 가치가 사라진 거래의 시대에, 시민이 다시 주권자가 되는 국가를. 그 설계를 우리가 하지 않으면, 자본과 알고리즘이 우리를 대신해 할 것입니다.
오늘의 질문
AI가 바꿀 미래, 당신이 끝까지 양도해선 안 될 절대적 권리는 무엇입니까?
<오렌지 시그널 브리핑(OSB)은 퓨처오렌지의 AI미래시그널 수집 기술을 통해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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